저물어가는 한해를 뒤 돌아 보며
-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에 대한 짧은 소견-
글쓴이: 촌안(村顔)
며칠 전, 기자에게서 차문화 제언에 관한 원고 청탁을 받고 필자는 무척이나 망설였다. 우리나라 다도계(茶道界)에 바라고 싶은 이야기나 개선점 또는 지적사항 등에 대한 부분들은 모두가 선뜻 나서서 말하기를 꺼려한다는 기자의 말이 피부에 사무치도록 동감이 되기에 더욱 망설이고 망설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차학(茶學)의 올바른 이론 정립과 다도계의 발전을 위해 누군가는 한번쯤 제안을 해야 할 것이기에 겸손을 뒤로 한 채, 필자가 차생활 중에서 개인적으로 보고 느낀 바, 몇 가지 소견을 솔직하게 피력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다도계(茶道界)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획일적으로 과거 지향적이거나 또는 과거의 전통성 계승에만 급급하며 자신만이 정통을 계승한 냥, 여타(餘他)의 다인(茶人)과 단체에 대해서는 매우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물론 이것은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현상은 차학 이론을 연구하고 차문화를 보급하는 단체에서부터 차를 생산하는 차농(茶農), 차를 판매하는 차상(茶商) 및 차 동호인 모임(차카페)과 일반 차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아주 광범위하고 구태의연하게 행해지는 일반적 현상이다.
그 지경이 실로 심각하여 어떤 다인들 사이에서는 인터넷상에서 심각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또 차의 고수라고 자처하는 몇몇 다인들은 다도(茶道)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 얼굴을 붉히며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아집의 추태로까지 번지기도 하여 진정 차를 사랑하는 순수한 다인들의 얼굴을 찌푸리게까지 한다.
게다가 곁에서 지켜보는 적지 않은 다인(나름대로 차의 지식을 갖춘)들은 토론을 해야 발전한다고 맞장구까지 쳐가며 싸움 같은 논쟁을 서로 부추기기도 하고, 또 혹자는 차학(茶學) 이론의 정립과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될 과도기적인 단계라며 미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개인적인 시각으로 볼 때 그 수위가 토론의 수준을 넘어서, 남을 짓밟고 자신의 명성을 얻으려는 추태로 밖에 보이지가 않는 것은 왜 일까? 이는 우리나라 차학이 학문의 체계적 이론을 제대로 정립해 오지 않은 탓일 것이다. 흡사, 다도의 정치판을 보는 듯하다. 근데, 우스운 것은 모두가 "다도"란 용어를 점잖게, 품위 있게 사용하고 있으며, 초심자들의 "왜? 차를 배우죠?"하는 질문에 대부분이 "차는 마음을 수양하고… "라고들 한다.
토론은 자기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고,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의 생각을 올바로 표현함으로써 서로의 틀린 시각을 절충하기도 한다. 또 남의 올바른 의견을 수렴하고, 나의 그릇된 생각을 고쳐가며, 혹 자신의 시각과 다를지라도 남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토론이다. 진정한 토론이 이루어질 때, 우리 차문화를 질적, 양적으로 진정 한층 더 높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획일적인 시각으로 서로 앞을 다투어 과거 지향적으로만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 다도계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물론, 그 중에는 우리의 차가 세계 속에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불철주야 묵묵히 지킴이의 역할을 하는 훌륭하신 다인들도 많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필자는 차를 마시며, 늘 그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차의 발상지인 중국은 혼란과 통일을 거듭하며 수많은 왕조(王朝)의 교체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시적 제다법이나 원시적 음다법(飮茶法)에만 그치지 않고, 과거 회고적인 경향에서 탈피하여 늘 미래 지향적으로 변모하고 발전하여 온 것을 우리는 잘 보아왔다. 이는 차뿐만이 아니라 도자기, 철제 도구 등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예가 있지만 일일이 손꼽자면 그 범위가 너무 방대한 고로 여기서는 차 문화 관련부분만 거론키로 하겠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고, 우리는 그 과거의 기록을 보고 공부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과거 여러 시대를 걸쳐 살아 온 수많은 선인들의 삶의 가치관과 사회관 그리고 우주관 등등을 엿 볼 수가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와 목적은 과거를 지향(指向)하기 위함이 아니며, 더욱이 과거에 대한 지식을 남 보다 좀 더 많이 안다고 자기를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다. 지식이야 좀 모자라면 어떤가? 좀 더 시간을 두고 배우고 습득해 가면 되는 것이다. 지식 자체의 많이 알고 조금 안다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역사 속에서 과거의 선인들의 삶의 지혜와 선인들의 가치관이나 사회관을 거울삼아 좀 더 현실의 발전을 추구하고, 과거의 역사 속에서 잘못된 의식이나 악습을 고쳐가는 거울로 삼아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 진취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야말로 과거나 현재보다 더욱 발전된 미래를 추구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차가 늘 원래의 자리를 못 벗어나고 한 곳에서 맴돌고 있을 때 (우리는 늘, 이것을 전통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중국 각지의 각종 전통차(傳統茶)들은 숱한 시대적 역경을 헤치고 나와 시대별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며 훌륭한 차 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며 차의 종주국답게 세계 속에 중국차를 전파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하루도 차가 없이는 살 수 없을(不可一日無茶以生)"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중국 어딜 가도 그들의 생활차는 쉽게 볼 수 있으며 그렇게 폭 넓고 두터운 저변 층의 형성은 중국차문화 발전의 모태이자 원동력이 되었고, 심지어 도자기에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이 일상생활 중에도 수시로 드나드는 차관(茶館 혹은 茶樓,茶房)은 중국 도처에 산재되어 있다. 이제 중국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민간사교장으로 발전 정착되었다. 당대(唐代)에 겨우 열 손가락에 꼽히던 명차(名茶)들이 이제는 수십, 수백, 수천 종으로까지 개량 발전되었다. 그들이 내 놓은 숱한 종류의 차들은 정말로 신기할 정도로 제 각기의 특색과 향, 그리고 맛을 지니고 있어 차를 사랑하는 세계 각국의 다인들을 매료시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고대 농경사회의 자급자족의 범주를 탈피하고 산업사회의 분업화에 걸맞게 차농(茶農), 차상(茶商), 차관(茶館), 차학(茶學), 차문화, 다예(茶藝), 다도(茶道) 등이 다양하게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어 심층 연구되고 광범위하게 발전해 온 중국 다도계를 보면 참, 부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가져 간 차를 단순한 음료의 수준에 멈추게 하지 않고 일본의 문화를 대표하는 다도로 승화, 발전시켜 왔다. 다도의 문화 속에 덩달아 그들의 도예도 발전하였고, 그들의 꽃꽂이라든가 정원의 문화도 함께 발전했음은 물론 그들의 정신문화에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음차의 저변인구에 비해 차 문화 보급단체가 수적으로 월등히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형식의 치우침과 국적불명의 해괴한 다풍(茶風)의 난립으로 인해 대중적 차 문화 보급의 속도는 지연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근 삼여 년 동안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차 카페(인터넷 차동호회)’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우리의 음다인구도 그 저변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이는 우리의 차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종종 차카페 역시 그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점점 획일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 어느덧 과거의 경직된 차 문화로 또다시 회귀(回歸)하려는 듯하여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일부 다인들은 일부 몰지각한 차상들의 얄팍한 상술과 유혹에 취해 호사(好奢)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다기는 물론 고급차의 구매와 수집에 정말로 광적인 자태를 보이고 있다. 욕심과 야심이 만만한 일부 몰지각한 다인들은 마치 우리나라 다도계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만물박사인 것 같은 착각과 지나친 책임감, 의무감 등으로 모든 분야를 다 통달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타인의 글과 사고를 깨부수고 그 위를 짓밟고 우뚝 서고 싶어 하는 헛된 승부욕을 억제할 줄 모른다. 그렇게 계속 치닫다 보면 과연 그 끝은 어디가 될지……!
또 이러한 아집들이 차를 소비하는 소비자에까지 미쳐 소비자들의 차의 선택에 있어 거의 강요에 가까운 설득을 당하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우리의 전통차가 최고 좋은 것이니 아무리 비싸고 입맛에 안 맞더라도 우리의 차를 마시라는 식의 구태의연한 강요는 이제 지양해야한다. 중국차가 우리의 차보다 맛과 향이 뛰어나다고 쉽게 단정하거나 맹목적으로 중국차만을 선호하는 것도 지양되어야 한다. 아울러 왜색풍의 다도와 격식을 정신수양이란 미명아래 차를 가볍게 즐기고자 하는 이들의 행위를 구속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중국차를 무척 선호하고, 또 어떤 이는 한국 녹차를 선호하며, 또 어떤 이는 일본차가 좋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의 선택의 자유에 맡겨져야 할 문제이지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차 문화와 차 산업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음차인구의 저변의 폭이 넓어져야하며, 아울러 좀더 다양한 다기(茶器)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음다법(飮茶法)도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발전해야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시급한 문제이다.
폭넓은 음차의 저변이 확대돼야 차농들도 더욱 품질 좋은 차를 개량, 발전시켜 갈 것이며, 이러한 차농의 발전은 우리차가 세계 속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더불어 차농과 음차인구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차상들도 건전한 차 문화 보급에 앞장서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우리는 차를 예술로도 승화시킬 수 있고, 차를 통한 예절문화도 보급, 발전시킬 수가 있으며, 더 나아가 고차원적인 정신세계로까지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불어 차학도 우리나라 학계에서 정식 학문의 영역을 점유하고, 차학이란 새로운 학문의 봉우리로 우뚝 솟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랫동안 그 문화의 맥을 이어서 내려오면서도 고려시대 이후로는 거의 부흥과 전성기를 맞이하지 못했던 다도계를 감안해 본다면 인터넷이란 매개체로 인해 모처럼 맞이한 우리의 대중차문화의 부흥이 계속 계승 발전되어 중국이나 일본처럼 더 많은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사라져 가는 훌륭한 우리의 차문화를 발굴, 계승하고, 이것을 발판 삼아 현대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건전한 차문화가 거듭 창신(創新)되고 정착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삼가 강호제현들의 매서운 질정을 바라며, 불암산 자락에서 촌안(村顔) 합장
(출처: 월간<다도(茶道)>)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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