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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스토리

지리산에서 만난 우리 발효차 '잭살' 중국 발효차를 능가하다

by yeon joo 2022. 10. 6.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 발효차를 생각하면 늘 한쪽 가슴이 아려오는 아픔을 느낍니다. 다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예년에 비해 재고가 많다는 이야기까지 접하고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납니다.

올해도 햇차의 계절을 맞아 화계에 내려가 몇몇 다원들을 둘러보았습니다만 예전 같은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찻잎의 수매가 이루어지지 않아 ‘찻잎 따기’를 아예 포기한 차밭이 있다거나 작년 재고에다가 판로(販路)마저 줄어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는 뒤숭숭한 이야기가 들려오니 발걸음이 더욱 무거웠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어느 작은 다원에서 발견한 귀한 보물과 희망은 이 번 여행에 있어서 최고의 수확이었습니다. 그것은 차의 생명력이 살아있는 매우 좋은 발효차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넘쳐나는 중국 발효차 때문에 늘 답답하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준 그 차는 바로 ‘잭살’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최근 국내의 발효차 제다법은 크게 양분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전통적인 제다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법이요 다른 하나는 온갖 방법을 접목시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제다 과정을 통해 차를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발효과정에서 황토, 옥, 숯 대나무 등을 사용하기도 하고 소위 ‘지장수’라는 것을 사용하여 발효에 필요한 습기를 보충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고유의 발효차라고 할 수 있는 ‘잭살’은 그 만드는 과정이 매우 단순합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인 과정을 말하자면, 찻잎을 그늘에 널었다가 비비고 다시 널었다가 비벼서 건조시킨 후 한지로 만든 봉지에 넣어 천정에 매달아 두거나 시렁에 얹어두고 보관합니다. 그리고 좀더 공을 들이는 경우에는 두 번째 비빈 찻잎을 따듯한 온돌방에 약간 두텁게 쌓아 놓고 보자가를 덮어 띄운 후 방안에 얇게 펴서 말려 완성합니다.


차는, 제다 과정을 통해 찻잎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잘 다스려서 마실 때 색향미가 좋고 마신 후에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합니다. 그런데 제다법이 너무 복잡하고 길어지면 차는 고유의 특성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더구나 찻잎의 특성을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어느 한 가지의 재료나 과정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것 저 것 혼합한 재료와 공정을 다양하게 추가하면 찻잎은 그 복잡한 재료와 공정에 의해 이상하게 변질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들어맞는 예는 아닙니다만 그것은 마치 좋은 음식 재료에 너무 과다한 재료를 혼합하거나 불필요하고 복잡한 공정을 가해 조리하면 그 본래의 맛을 잃어버리고 재료의 궁합이 맞지 않아 이상한 음식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날에 만난 발효차는 그야말로 예부터 전해오는 단순한 방법으로 만든 ‘잭살’ 그대로였습니다. 찻잎도 품질이 우수한 우전이나 세작이 아니었고 중작을 넘어선 거친 것이었습니다. 제다법 역시 이미 언급한대로 전통적인 테두리 안에서 단순하게 만들어졌는데 다만 황토방에서 띄우기를 한 것이 약간의 특징적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강한 맛과 성질을 순화하기 위해 옹기에 3 년간 보관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별도의 열처리과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단순하게 만들어진 그 차 잭살은, 그 때까지 이미 마신 차 때문에 생겼던 얼굴의 화기(火氣)와 치밀어 오르던 기운을 단번에 다스려 한순간에 편안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문헌에도 없는 ‘구증구포’에 매달려 좋은 차를 찾던 편견과 선입관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잭살'의 떫떠름한 맛과 기분 좋은 풋내음이 생각납니다.

‘잭살’은 우리 발효차입니다. 이 ‘잭살’을 잘 보존 발전시켜 좀더 안정적인 색향미와 기운을 가진 발효차를 만든다면 이 ‘잭살’이야말로 중국 발효차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태여 하나 더 보탠다면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출처 : 차와도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