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차를 마시는 이들이 다구(茶具)와 다기(茶器)의 용어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과 이론(異論)이 분분하여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체, 사용되어 온 까닭에 차를 즐겨 마시는 차 애호가들과 차를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 다구와 다기의 용어 사용과 이해에 적지 않은 혼란을 가중 시킨 게 사실이다. 이에 간단하게나마 다기와 다구의 명칭의 유래와 그 용어의 변천과정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문헌에 의하면, ‘다구(茶具)’와 ‘다기(茶器)’는 처음엔 별다른 구분없이 모두 '다구(茶具)'라고 칭하였다. 다구(茶具)에 대한 기록은 왕포(王褒)의《동약(童約)》에 최초로 보인다. 바로 “팽도진구(烹荼盡具)”라는 문귀인데, 이 말은 “팽다(烹茶) 하기 전에 사용 할 다구(茶具)를 깨끗이 씻어 갖춘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도(荼)’는 ‘차(茶)’자가 조자(造字)되기 이전에 ‘차(茶)’자를 대용하여 쓰였던 ‘차(茶)’자의 옛날 글자임. >
다기(茶器)라는 명칭은 진대(晋代)이후에 생겨난 말이며, 당대(唐代)에 이르러 비로소 다기(茶器)와 다구(茶具)의 명칭이 확실하게 구분지어 진다. 다성(茶聖) 육우(陸羽)는 자신의 저술인《다경(茶經)》의 <二之具>와 <四之器>조에서 다구(茶具)와 다기(茶器)의 용도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즉, 채다(採茶:차를 따고), 조다(造茶:차를 만드는)하는데 필요한 모든 연장을 일컬어 ‘다구(茶具)’라 명칭하고, 차를 우려내거나 혹은 삶아내고, 마시기 위한 제반 집기들을 가리켜 ‘다기(茶器)’라고 정의하고 있다.
육우의 다구(茶具)와 다기(茶器)의 용도에 따른 명확하고도 상세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송대(宋代)에 이르게 되면서 또 다시 ‘다구’와 ‘다기’의 용도와 명칭의 구분은 불분명해지게 되기 시작하면서, 다구와 다기를 합칭(合稱)하여 모두 ‘다구(茶具)’라고 일컫게 된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구와 다기는 거의 구분이 없이 모두 ‘다구’라고 정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십 수년 전, 대만에서 중화 차문화 부흥운동이 한창 전개될 때, 필자의 석사논문 지도교수였던 오지화(吳智和) 선생은 차에 대한 논문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육우의 구분법을 쫓아, ‘다기’와 ‘다구’의 용도에 따른 명확한 구분과 그 명칭의 사용을 늘 강조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나,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는 어느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정말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인지, 언어나 문자의 사용의 변천과정도 대중적 시대의 흐름을 거슬릴 수는 없는 가보다.
필자의 소견으로 다구와 다기의 현대적 의미를 간단히 요약, 정리하여 다음과 같은 사족을 덧 붙이고 싶다.
기왕에 오랜 세월 동안을 제다(製茶 혹은 造茶:차를 만드는 일)나 도예(陶藝)에 종사하는 이들은 물론, 차를 즐겨 마시는 애호가들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으로 많은 대중들이 다구라고 합칭(合稱)하여 왔으니, 우리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하지만, 다기(茶器)라는 명칭도 아직 엄연히 존재하여 사용되어 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과연, 다구와 다기는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을까?
제다(製茶)에 필요한 연장들을 가리켜 ‘다기(茶器)’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기(茶器)’라는 말은 어느새 ‘차를 마시는 그릇’ 혹은 ‘차를 마시기 위한 도구’라는 인식이 깊이 새겨 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필자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데, 육우가 《다경》에서 말한 ‘다기(茶器)’의 의미는 변한 게 없는 듯 하다. 단지, ‘다구(茶具)’의 의미는 좀 변한 듯 하다. 즉, 다구는 그 의미하는 범위가 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다구(茶具)’의 의미는 차를 따고, 만들고 하는데 필요한 연장(농기구)의 의미에서부터 차를 우려내고, 마시기 위한 용기나 집기에 이르기 까지 그 의미가 확대되어 상용(常用)되고 있다.
그러나 ‘다기(茶器)’는 차를 우려내고 마시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에 국한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결론 내리면, ‘다구(茶具)’는 ‘다기(茶器)’가 될 수 있어도, ‘다기(茶器)’는 ‘다구(茶具)’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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