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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made

칠보 ㅡ오방색과 칠보의미학

by yeon joo 2023. 2. 1.

일곱 빛깔을 조각하다

오방색과 칠보의 미학

 2003년 5월 첫발을 내디딘 '꿈꾸는 과학'은 과학의 대중적 글쓰기와

일러스트레이션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꿈꾸는 과학은 모두가 즐거운 과학을 이야기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를 위해 꿈꾸는 과학은 다양한 과학책들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비판적 사고와

 과학적 상상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또한 꾸준히 과학 글쓰기를 연습함으로써

자신만의 글쓰기 스타일을 구축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퍼져나가는 꿈꾸는 과학의 소망이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전하고 이러한 즐거움들이 모여 건전한 과학문화를

만들어 나아가길 희망합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허덕이던 U씨. 주말을 맞아 모처럼 갖게 된 달콤한

휴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조용한 고궁을 찾아가기로 했다. 고궁의

정문을 지나 탁 트인 앞마당과 정갈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목조건물들을 보니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시원하게 열린 가슴 속으로 작은 새가 한 마리 날아드는 것

 같은 기분이다. 괜시리 고향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어!

턱밑까지 차올라 도무지 빠질 것 같지 않던 스트레스를 상쾌하게 날려버리고

이제는 고개를 높이 들어 주변의 경관을 감상할 정도로 여유가 만만해진 U씨.

 이젠 제법 창의적인 영감들마저 떠오를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의 눈에는 처마 아래를 받치고 있는 단청이 들어온다. 문득 그에게 떠오른 오래된

궁금증 하나. 고궁이나 산사를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단청에는 이토록 다양한

색이 사용되고 있는데 어째서 촌스럽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 걸까?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물이나 한복, 우리 음식에서는 유난히도 강렬한

원색의 조화를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황, 적, 백, 청, 흑색의 향연. 오방색이라,

 이름이 예쁘기도 하지. 음양오행사상에서는 오방정색이라고도 하는 이 다섯 가지

색들에 각각 중앙과 동서남북의 방위를 부여한다. 한옥, 한복, 한식에서는 종종

황, 적, 백, 청, 흑색이 저마다의 빛깔을 고스란히 내뿜으며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상들은 특유의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이 모임을 번잡하지

않고 조화롭게 만들어냈다.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오방색의 세계에만 갇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황, 적, 백, 청, 흑의 오방색을 넘어선 다양한 빛깔이 조상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칠보공예를 통해 자연의 빛깔을 담아낼 줄 알았다.

칠보공예에서의 칠보(七寶)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걸까. 칠보라는 말에는

일곱 가지 보물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단어는 아미타경 · 법화경 등에

‘극락토는 금, 은, 유리, 거거, 마노, 산호, 호박, 진주의 일곱 가지 빛깔의

 귀중한 보석으로 칠보장엄한다’ 고 적힌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참고문헌 1)

실질적으로 칠보란 금속이나 점토, 유리 등의 다양한 바탕 재료에 유약을 발라

빛깔을 구워내는 표현 기법을 말한다. 칠보 기법으로 만들어진 칠보공예품은

일곱 빛깔 무지개만큼이나 색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혹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를 여행할 가능성을 꿈꾸는 독자를 위해 칠보의 또

 다른 이름 ‘파란’ 혹은 ‘파랑’을 귀띔해 주어야겠다. 조상들이 사용하던 유약

색깔에서 유래한 파란이란 이름은 1900년대까지 심상치 않은 이름을 간직하며

찬란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삼국 시대에 금으로 만들어진 장신구에서 처음 발견된

 파란공예품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파랑색에서 탈피하여 짙은 노란색,

감색, 파랑과

녹색의 중간색, 가지색 이렇게 네 가지 색으로 다양해졌다고 한다.

칠보의 다른 이름이 유약의 색을 딴 파란이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유약

칠보공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원하는 색을 내는 유약을 바르는

과정은 칠보기법의 핵심이기도 하다. 칠보기법을 탄생시킨 칠보 유약이란 무엇이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칠보 유약은 금, 은, 구리, 점토, 유리 등 칠보공예의 바탕재료 표면에 녹여

바르는 색유리질 재료이다. 칠보 유약을 만들려면 규석, 연단, 붕사, 소다가

필요한데 첫 번째 단계에서는 이것들을 혼합하고 1,300℃에서 용융시켜야 한다.

이제 액체상태의혼합물을 물속에서 급히 식혀 알갱이가 생기도록 놔둔다.

이 알갱이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고 원하는 색을 내는 유기금속 산화물을 섞어서

다시 950℃에서 용융시키면, 칠보 유약, 준비 완료!



오늘날에는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에 비해 유약의 색깔이 훨씬 다양해졌다.

 안티몬, 철 산화물, 코발트 화합물, 이산화망간, 니켈 산화물, 염화은 등

유약을 만들 때 첨가하는 각종 금속과 금속 산화물의 종류에 따라

노랑, 빨강, 녹색, 파랑, 감청, 검정색, 자홍색 등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밖에 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원한다면

투명유약과 반투명 유약 등을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다

 

칠보 유약을 만들 때 첨가되는 금속 산화물들은 빛깔을 내는 기능 외에도,

칠보공예품의 바탕이 되는 금속 재료의 표면에 유약이 잘 붙어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금속 산화물 덕분에 칠보 유약이 금속 표면에 더 잘 용해되고 접착될 수 있는 것이다.

색유리질인 칠보 유약이 보통의 유리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칠보기법의 장점을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자유로움, 다양성,

예측 불가능성 등이 되지 않을까.

칠보기법을 통한 자유로운 표현의 가능성은 물감을 이용한

미술작품 창작과도 견줄 수 있다. 이는 우선 칠보가 여러 가지

표현기법을 허용하기 때문이고, 또 칠보기법으로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료에 칠보 유약을 발라 칠보공예품을 빚어내는 방법은 한 가지라고 막연히

추측하고 있었다면 놀랄 준비를 해야 한다. 실제로 적용 가능한 칠보기법은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바탕재료의 앞뒤 양쪽 표면에 붓을 사용해서 칠보 유약

가만히 올려놓는 방법은 수많은 유약 올리기 방법 중 가장 기본적인 기법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붓이나 주걱을 사용해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고 구워내는 그리기 칠보와,

체나 분무기를 사용해 유약을 뿌려내는 뿌리기 칠보 등의 기법을 이용하면 수채화나

유화 못지않은 질감을 얻어낼 수 있다.

여느 물감에 버금가는 칠보 유약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색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때때로 나타나는 빛깔들은 창작자의

예측을 넘어서기도 한다.

창작자는 어렴풋이 ‘이런 계열의 색이 나올 것이다’ 정도로만 빚어질

색을 예측해볼 수 있을 뿐. 같은 칠보 유약을 사용해 빛깔을 표현한다 할지라도

어떤 온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구웠는지,

유약을 얼마나 발랐는지 등의 세부적인 조건들에 따라서

실제 구워지는 색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같은 유약과 바탕재료로 작업하더라도

조금씩 다른 분위기의 색을 연출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본적인 색의 유약들을 활용해서 새로운 색의 유약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단, 이때 칠보 유약을 단순히 물감처럼 섞어서 사용해서는 혼합색을 얻을 수 없다.

혼합색을 얻으려면 가루 상태의 유약을 섞어서 다시 한 번 혼합유약을 구워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화려함과 단아함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칠보공예품은 박물관의 유리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박제품이 아니다. 칠보공예는 현재진행형이다.

칠보기법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샘솟아 나오는 창의력을 가진 창작자들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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