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모(The Alamo)
원제:The Alamo
감독:존 웨인
출연:존 웨인, 리처드 위드마크, 로렌스 하비
내용(출처-windshoes.new21.org)
알라모를 잊지 말라 Remenber the Alamo!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선조들이 겪어낸 역경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독재자에게 대항하여 독립을 쟁취한 것이라면 더욱더 그럴 것이다. 게다가 역사라는 것은 때로 해석하기 나름이고(이 말에는 승자의 편의대로 기술된다는 뜻도 포함된다), 현재의 필요에 의해 필요한 부분들만 편리하게 재단하여 나타나곤 한다. 이때 영화는 역사를 재해석하거나 왜곡하는 데 아주 편리한 도구로 활용되곤 하는데, 이건 비단 할리우드 영화들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은 간혹 뉴스를 통해 정치인들이 '국민통합에 저해되는 사안'이라는 등의 꼬리표를 단 사건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게된다. 이때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통합'이 의미하는 뜻을 풀이해본다면 진실, 진의를 다소 왜곡하더라도 국민의 애국심 혹은 애국주의, 민족자긍심, 민족주의에 기대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국민 정서가 호도되거나 여론 조작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사건의 의미가 해석되어 널리 유포되길 바란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영화는 때로 대중이 원하는 것, 혹은 시대의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영화 <알라모>는 미국의 영웅 아이콘(Icon)역을 자임한 배우 존 웨인의 감독 데뷔작이자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10년 동안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1835년 10월부터 1836년 4월까지 계속된 텍사스 독립 전쟁 속에 벌어진 하나의 사건, 텍사스 알라모 요새에서 185명의 민병수비대 전원이 장렬히 전사한 사건은 미국의 서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였으며, 이 소재는 그동안 수 차례 영화화되었고, 이와 관련된 서적 출판물만 하더라도 1백 5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존 웨인 감독·주연의 <알라모>일 것이다.
영화 알라모와 헨리5세,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앞서 영화는 역사를 재해석하거나 왜곡하는 데 아주 편리한 도구로 활용되곤 한다고 말했는데, 그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몇 편의 영화들이 있다. 먼저 영국의 명배우들이 주연과 감독을 맡았던 영화 <헨리 5세>를 보자, 영국의 프랑스 영토에 대한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며 벌어진 전쟁의 승자로서 브리튼족의 영웅으로 널리 알려진 '헨리 5세'를 다룬 영화 역시 여러 편이 있지만 유명한 아쟁쿠르(혹은 아진코트) 전투라는 같은 소재를 다룬 영국 영화는 1944년 로렌스 올리비에(감독·주연)의 것과 1989년 케네스 브래너(감독·주연)의 두 편이 가장 유명하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헨리5세>를 발표한 1944년은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끈 해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한 '헨리5세'는 잘 생긴 얼굴에, 당당한 체구, 위풍당당한 목소리까지 겸비한 뛰어난 - 어떤 고난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맞선 - 왕이었고, 나치에 맞선 영국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기에 아깝지 않은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1989년 케네스 브래너의 <헨리 5세>를 보자. 그는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아쟁쿠르 전투를 지휘하던 영국왕 헨리 5세와 동갑이었던 27세였고,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한 '헨리 5세'에 비해 앳되고, 아쟁쿠르 전투 장면 역시 영웅적인 면모보다는 비참함을 부각하는 쪽에 가까웠다. 이렇게 같은 전쟁, 같은 역사적 인물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그 해석의 시각이 달라보이는 이유는 1944년의 헨리 5세와 1989년의 헨리 5세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 - 베트남 전쟁과 마거릿 대처가 지휘하여 치른 포클랜드 전쟁이란 식민지 영유권을 보장받기 위해 치른 무의미한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 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작에 비해 후작의 <헨리5세>가 비록 덜 영웅적인 면모를 보였고, 영화적 성공도라는 측면에서는 후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지 몰라도 인격적으로는 좀더 성숙해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그 중에서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지상최대의 작전(The Longest Day)>와 최근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가 그것이다. 1962년 제작된 <지상최대의 작전>에서 주목해 볼 만한 문제는 이 영화가 이전에 제작되던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어떤 영화보다도 적이던 나치 독일군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냈던 오마하 해변에서의 대규모 희생 장면에서 조차 독일군은 비록 적이지만 훌륭했고, 상륙하는 연합군(주로 미군)의 희생 장면 역시 잔혹하다기 보다는 총성 한 방에 아군 한 명이 죽는 형태로 깔끔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그려지고 있는 독일군은 상대적으로 잔혹하고, 그들을 상대하는 미군들 역시 전쟁의 무시무시한 포화를 뚫고 지나가야만 했다.
이 두 영화가 이렇듯 큰 차이를 보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1962년은 동서 양대 진영의 냉전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이제 독일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서구 진영의 한 맹방으로서 동독을 포함한 소련에 대항하는 미국측 진영의 최일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그들을 계속해서 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선 그다지 유익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독일군 장성들은 에르빈 롬멜을 포함해서 히틀러라는 한 미친 광인에게 어쩔 수 없이 지배당하는 직업 군인으로 상당히 동정적인 시각에서 다뤄진다. 그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미국이 냉전의 양대 축이던 소련을 굴복시키고 세계 유일의 패권 국가로서 부각된 이후에 제작된 영화였다. 미국은 자신이 '라이언'으로 상징되는 세계를 어떻게 구원했는지 영화를 통해 증명해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같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이 두 편의 영화는 한 편에서는 팔다리가 끊겨 나가고, 총탄에 관통당한 병사의 배에서 창자가 쏟아져 나오는 희생을 과감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었고, 다른 한 편의 영화에서는 199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 기념식 초대를 거부당할 만큼 현재까지 그 상처가 가시지 않은 독일에 대해 그렇게 빠른 화해의 제스처를 내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앞서 말한 <헨리5세>와 <지상최대의 작전&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별도의 장을 만들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루도록 하겠다.) 프랑스 극우정치 지도자 장 마리 르펭이 잔다르크에 대한 열렬한 숭배자라는 사실 또한 유념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민족주의는 그래서 위험할 수 있다.
텍사스 독립전쟁과 명백한 운명
멕시코 정부는 멕시코 북동부 테하스주를 개척하고 싶은 마음에 미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토지를 양도해 주었다. 스티브 F. 오스틴이 모집한 미국 출신의 이주민들은 1822년 텍사스에 도착했다. 그 뒤로도 수많은 미국인들이 텍사스로 이주했고, 그들은 멕시코 시민권을 다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멕시코측 요구를 따르기는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멕시코 국경 저쪽의 미국 시민으로 살고자 했다. 1833년 1월에 소집된 멕시코 의회는 1836년 12월 30일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신헌법을 제정하여 제 2 중앙 집권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이 사이에 스페인은 멕시코를 재정복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1836년엔 멕시코의 독립을 승인했다.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것은 1821년의 일이었다. 텍사스는 멕시코 코아우일라주 소속의 영토로 25,000명의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멕시코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원한 미국 이주민들이 1831~1832년 사이에 무력을 동원하여 멕시코측 세관과 요새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어 1833년부터는 멕시코 소속하에 자치정부 수립을 요구하였고, 1836년 2월에는 드디어 독립을 선언하였다.
조금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아직 개척되지 않은 땅을 개척하기 위해 이민을 받아들였더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해 버리고, 그들에게 땅을 양도해준 주인을 배반하고 다른 주인을 받아들이겠다고 반란을 일으켜 주인이 세운 건물들을 파괴해 버린 것이 텍사스 독립전쟁의 발달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산타 안나를 비롯한 멕시코측 통치자들의 연속된 실수와 독재, 스페인·프랑스군과의 잇따른 전쟁으로 인한 실정과 통제력 상실도 그 원인이 되었다.
위기에 직면한 멕시코 정부는 자금과 군 병력 부족으로 인해 정부군을 파견하지 못하고 1836년 베라크루스에서 프랑스군과 대전한 산타 안나에게 텍사스 지역의 작전 수행을 맡겼다. 산타 안나는 1836년 3월 6일 6,000명의 병력을 지휘하여 텍사스의 알라모 요새를 공격했으나 4월 21일 산하신토(San Jacinto) 전투에서 체포되어 미국으로 이송되었다. 그후 산타 안나는 미국의 잭슨 대통령에게 텍사스의 독립을 약속하고서야 6월말 멕시코로 귀국할 수 있었다. 1836년 독립을 성취한 텍사스 공화국은 미국에 합병을 요구했으나 남북전쟁의 조짐 등으로 인해 이를 잠시 보류했다가 1845년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
현재 텍사스는 미국에서 2번째로 큰 주로 미국 전체 영토의 7.4%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북한을 합한 것보다도 3배 이상 넓다. 친구를 뜻하는 인디언 말 '테하스'(Tejas)에서 유래했다는 텍사스는 석유 생산량이 미 전체의 35%를 차지하며, 천연가스도 전국에서 가장 많이 난다. 본래 인디언들의 땅이었던 텍사스는 정부가 8번 바뀐다. 1691년 스페인령이 된 후 1685~1690년은 프랑스, 1690~1821년은 스페인, 1821~1836년은 멕시코, 1836~1845년은 독립국가인 텍사스 공화국, 1845~1861년은 미합중국, 1861~1865년은 노예제 문제로 합중국에서 분리된 남부 연방, 1865년부터 현재까지는 미합중국 소속이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멕시코 군인, 관리, 정치가들처럼 우스꽝스럽고 무능한 인물들은 아마 코미디 영화에서 일부러 웃기고자 등장하는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과연 멕시코인들이 무능해서 자신들의 영토와 권리를 그토록 쉽게 미국에 내어주었던 것일까? 물론 그들 자신의 무능도 일정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무능보다는 미 합중국의 탐욕이 더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 무렵 미국은 '명백한 운명(manifiest destiny)'의 당위성과 함께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태평양에 이르기 위해 영토 확장에 몰두하고 있었고, '포크 대통령의 전쟁(Polk's War)'으로 불렸던 멕시코 전쟁에 반대했던 유일한 인물이 바로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한편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많은 양심적 지식인들처럼 이때 이미 전쟁에 반대하여 전비로 충당될 세금 납부를 거부했다.
어쨌든 멕시코는 이때 이후 1848년까지 전국토의 절반을 미국에게 빼앗겼고, 리오 그란데 강 연안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때의 정치 지도자 산타 안나는 이후 정치적 실권을 잃고, 오랫동안 망명생활을 하다가 걸인이 다 되어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부는 그에게 연금을 지급했는데 그는 자신이 받는 연금을 거리의 걸인들에게 나눠 주었고, 거지들만이 그를 '대통령 각하'라고 부르며 예의를 갖췄다고 한다
영화 알라모와 이런 작품이 제작된 시대적 원인
영화는 당시 텍사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사건의 전후 설명 없이 바로 알라모 요새의 전투 개시 직전부터 시작한다. 샘 휴스턴 장군이 이끄는 텍사스 민병대가 민병대를 재조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알라모 요새에 집결한 의용병들은 서부 개척의 영웅 데이비드 크로켓을 비롯하여 불과 200여명도 채 안되었다. 게다가 젊고 고집센 트래비스 대령과 능력은 있지만 늘 술에 취해있는 짐 보이는 서로 알력 관계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산타 안나가 이끄는 6,000여 멕시코군과의 전투에서 도저히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산타 안나의 엄청난 화력(실제로 산타 안나가 이끄는 멕시코군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중무장한 군대는 아니었다고 한다. 만약 영화처럼 멕시코군이 많은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알라모는 하루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과 병력수 때문에 알라모 요새를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짐 보이와 트래비스 대령 사이에 끊임없이 내분 일보 직전까지 치닫는다. 이와중에 그 중재자로 나서는 것이 크로켓 대령(존 웨인)이었다. 드디어 알라모 요새 앞에 당도한 멕시코군은 먼저 연락 장교를 보내 알라모 요새 성문 앞에서 그들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했고, 항복한다면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트래비스 대령은 대답 대신에 장교의 머리 위로 포탄을 발사한다. 이로써 전쟁은 시작되었고, 알라모 수비 대원은 이후 13일간 멕시코군의 발목을 잡아두는데 성공한다. 요새가 함락되기 직전, 부상당한 짐 보이는 부상자들이 누워있는 예배당 안에서 멕시코군을 상대로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죽고, 트래비스 역시 칼을 들고 성문으로 밀려드는 멕시코군을 상대로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다. 크로켓 대령은 몰려드는 멕시코군들을 화약고로 유인한 뒤 화약고에 불을 붙여 수많은 멕시코 군들과 함께 생을 마감하는 것이 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다.
만약 산타 안나 장군이 좀더 전략적으로 사고하여 알라모 요새에 1,000명 정도의 멕시코군을 남겨두고, 나머지 5,000의 병력으로 샘 휴스톤 장군을 추격하였다면 텍사스의 독립은 저지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결국 텍사스는 독립해서 미국의 품에 안기게 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지지가 없었다면 텍사스 이주민들이 멕시코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산타 안나는 쓸데없는 고집을 세워 전략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는 알라모 요새를 공략하는데 13일을 소모했고, 1,000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게다가 이후 휴스톤 장군의 전술적인 후퇴전술에 말려들어 전력을 소모하다가 산하신토에서 전력을 충분히 재정비한 샘 휴스톤 장군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패하고 자기 자신마저 포로가 된다.
이 영화가 발표된 1960년은 미국이 매카시즘의 격렬한 소용돌이로부터 막 빠져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매카시즘이란 '마녀사냥'은 '빨갱이 사냥'이라는 미국 역사를 통틀어서도 종잡을 수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애당초 실체가 없는 빨갱이 사냥에 나선 미국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협박하고, 고발하여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라"고 윽박질렀다. 빨갱이로 의심받은 사람들은 국회 청문회에 출두하여 다른 누군가를 빨갱이로 고발하거나, 좀더 용기있는 사람은 국외로 망명아닌 망명길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협박 앞에 무엇을 할 수 있을가? 다른 빨갱이를 만들어내고 탄압하는 길 이외에는.
그러나 존 웨인은 사회 전반이 이토록 공산당 탄압, 빨갱이 사냥으로 떠들석하던 시기에 누구보다도 두드러진 미국 지상주의자로, 맹렬한 반공주의자로 알려졌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그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존 웨인이라는 한 개인의 개인적 성향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존 웨인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평소 주장해오던 바를 대중에게 널리 펼쳐보이고 싶어했다. 그것은 미국의 건국 이념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미국민들이 미합중국을 어떤 희생을 통해 건국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내부의 이견을 조율하고, 하나의 단합된 힘을 과시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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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en Leaves of Summer(여름날의 푸른 잎새들)는 이 영화의 테마곡으로 이 곡은 1836년, 미국 텍사스 이주민들이 멕시코로부터 텍사스를 독립시키기 위해 멕시코 정부군과의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알라모"란 역사적인 요새에서 대전하면서 미국인 결사대가 결전의 전날 밤 내일이면 국가와 가족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187명 민병대의 가슴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노래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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