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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스토리

체를 위한 삼바 - 빅토르 하라 & 체 게바라 다큐멘터리

by yeon joo 2022. 12. 23.

체를 위한 삼바(Zamba del Che)

 

작사 : 빅토르 하라(Victor Jara)

작곡 : 빅토르 하라(Victor Jara)

노래 : 빅토르 하라(Victor Jara)

음반 : Te Recuerdo Amanda(1969)

 

나는 제 멋대로 북을 두드리며

이 삼바를 부르며 오네

그들은 한 게릴라를 죽였지.사령관 체 게바라를.

 

셀바, 빰빠, 산맥 속에서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이것이 그의 운명이었네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인간의 권리들을 짓밟는가!

일요일,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에도

우리에게 군인들을 데려다 놓았네

민중들을 지배하기 위해

독재자들, 암살자들, 고릴라들, 그리고 장군들이

 

그들은 농부와 광부, 노동자들을 착취하네

수많은 고통이 그들의 운명이네

배고픔, 비참함과 아픔

볼리바르는 그들에게 길을 제시했고

우리 민중들을 착취자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게바라가 그 뒤를 따랐네

 

쿠바에게 해방된 나라의 영광을 주었고,

볼리바아 역시 그의 희생적인 삶을 울어주네

농부들을 '무화과나무의 성 에르네스토'라고 그를 부르네

셀바, 빰빠, 산맥 속에서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이것이 그의 운명이었네

▲ 빅토르 하라의 음반 'Te Recuerdo Amanda'(1969)

 

체게바라는 인류에 대한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던 휴머니스트였고, 편안한 삶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았던 진정한 우리 세기의 가장 성숙된 인간이었다. -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불멸의 혁명가 '체 게바라'(Ernesto Guevara de la Serna, 1928년 6월 14일 ~ 1967년 10월 9일)의 사망40주년을 맞이하여 전 세계에서 추념식이 거행되고 있다. 체 게바라는 현실속에서 나약해지는 나를 채찍질 하는, 나에게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존재이다.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 준 체 게바라를 노래한 '빅토르 하라'는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가수이며 연극인으로서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이 칠레의 모데나 대통령궁에서 반란군에 의해 장렬한 최후를 마치던 바로 그 때 반란군의 총격으로 살해를 당했다. 빅토르 하라의 삶과 세상을 향한 시선은 혁명시인 김남주를 떠올리게 한다. 빅토르 하라가 체 게바라를 노래한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오래전 구입한 빅토르 하라의 생애와 음악을 다룬 책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를 얼마전에 다시 읽고서 그의 음악을 올려보고자 하였으나 체 게바라를 노래한 '체를 위한 삼바'(Zamba del Che)를 먼저 올리게 되었다. 밑에 미리 올려 놓은 체 게바라 다큐멘터리 <체 - 사랑, 정치, 그리고 반란>과 이산하 시인이 '먼 저편' 이라는 이름으로 엮은 체 게바라의 시(詩) 중에서 몇 편을 골라 같이 올린다.

 

체를 위한 삼바(Zamba del Che) - 빅토르 하라(Victor Jara)

체 게바라 다큐멘터리 <체 - 사랑, 정치, 그리고 반란>

 

내가 살아가는 이유

 

체 게바라

 

그것은,
때때로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이기주의


체 게바라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이 오더라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개인이기주의다!
그것은 감기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어서
늘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전염시킨다
전염경로인 공기와 물을 없앨 수도 없다
오직 마음을 개조시키는 정신혁명뿐이다
그것은 인류 최고의 무기인 사랑이다!
그 사랑은
만능열쇠처럼 어떠한 것도 열 수 있다


체 게바라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민중의 눈동자들도
저렇게
반짝일 수만 있다면...

▲ Werner Horvath"Garden of Revolution - Che Guevara"

 

나의 손끝


체 게바라


아름다움과 혁명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혁명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손끝에 있는 것이다

체 게바라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리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들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유언


체 게바라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게
저항하라!
지금
나의 이 실패는
혁명의 종말이 아니다!


그리고
이 말을 꼭
카스트로에게 전해달라


내가 패배할지라도
승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에베레스트산은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다 실패했지만
결국은 정복되고 말았음을!

▲ 예수의 희생에 비유된 체게바라

 

사그러들지 않는 한 혁명가의 아이콘,

'유비쿼터스' 체 게바라

 

이광석 월간 네트워크 36호(네트워커 편집위원 suk_lee@jinbo.net)

 

올 여름에 옥스퍼드에 갈 일이 있어 그 곳을 경유해 런던을 방문했다. 런던에 가자마자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이란 곳을 찾았다. 7, 8월 두 달여 동안 체 게바라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10평 남짓한 곳에 마련된 체의 전시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아담했다. 이곳에서 혁명가의 이미지를 새겨놓은 다양한 아이콘들을 볼 수 있었다. 체의 이미지가 새겨진 쿠바산 시가, 포스터, 티셔츠, 사진, 버튼, 인형, 문신, 가방, 벽화, 화폐, 맥주, 시계 등이 다채롭게 전시돼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60년대 활동했던 한 혁명가의 이미지가 이토록 전 세계 대중의 뇌리와 각종 상품과 신체에 깊게 각인된 적은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혁명가 체의 대중적 이미지는 국적을 뛰어넘고, 동성애자와 원주민 등 소수자 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예수의 희생과 존 레논의 평화주의에 비교되고, 선동 예술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고, 길거리 패션의 약호로 쓰여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의학을 전공하고, 과테말라에서 저항을 조직하다 탈출해 55년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운명적으로 만나고, 59년 쿠바혁명의 성공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홀연히 모든 관직을 훌훌 털고나와 우루과이, 브라질,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등지로 떠돌며 공산주의 게릴라 운동을 조직하고, 결국 볼리비아에서 군부에 맞서다 미 CIA의 정보력과 미국에서 훈련받은 2천여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쫓기다 부상을 입고 잡혀, 허름한 학교건물 안에서 4발의 총탄을 맞고 전사한다. 파란만장한 삶을 39살의 나이로 마감했으니, 한창때에 갔다.

 

체의 베레모, 강인한 눈빛의 응시, 굵은 얼굴선, 가죽 외투, 그리고 흐트러진 수염 등은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자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2000년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힌 데는 그 자신이 벌인 끊임없는 권력에 대한 자기부정과 평생을 업으로 삼았던 게릴라 투쟁 말고도, 이상하리만치 전 세계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그가 지닌 특유의 이미지가 한몫했다. 실지 체의 아이콘이 모두에게 각인된 데는 60년 3월 <체, 게릴라 영웅>(Che, Guerillero Heroico)이란 제목으로 찍은 알베르또 디아즈 구띠에레즈(그의 사진 작업실 이름을 따서 흔히 알베르또를 '코다'로 부른다)의 사진 작품이 계기가 된다.

코다(Korda)는 피델의 전속 사진사였으나, 그가 찍은 체 사진들이 오히려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체를 대중문화와 예술계의 중요 상징으로 부각시킨다. 2001년 그가 파리에서 죽기까지 코다는 사진집과 전시회를 통해 쿠바혁명과 체 특유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렸던 인물로 기록된다. 실지 우리가 보는 그의 친근한 이미지들은 코다가 만들어낸 사진의 변형물들이다.

 

어쨌거나 혁명의 세월이 흘러 이제 체가 그토록 싸웠던 자본주의의 물신화된 가치 행태에 그 스스로가 상품 아이콘이 되어 팔리는 현실이 됐다. 젊은이들은 체 가방을 매고, 길거리 야시장에서 체 셔츠를 사 입고, 체 문신을 팔뚝에 새기고, 체 '빤쓰'를 입고, 체 맥주를 마신다. 일부 그의 아이콘이 자본주의 상품화의 경계를 넘나든다고는 하나, 멕시코 농민군들의 라깡도나 정글에 새겨진 빛바랜 그의 벽화와 빈민들의 삶터에 그려진 체의 모습, 소수 저항의 패러디로 그려진 게이 모습의 체, 예수의 얼굴로 핍박받는 체, 경건해야할 수녀의 젖가슴 위로 새겨진 체, 미국 달러 위에 그려진 체, 그리고, 복제되고 새롭게 창작되어 인터넷을 통해 흐르는 수많은 체의 디지털 이미지들은 저항과 자유의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하다.

체는 죽어서도 이렇듯 현대 자본주의의 야만에 들러붙어 게릴라전을 펼친다. 마치 시스템에 경련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처럼, 물신화된 상품들에 들러붙고 옷과 몸에 새겨져 거리 곳곳을 메운다. 이는 단순히 과거 혁명 시절에 대한 향수와는 다르다. 현대인의 자본주의에 대한 잠재된 분노 수위를 따지려면 얼마나 많은 체의 아이콘들이 사방에서 목격되는가를 봐야 한다. 이는 정비례한다. 그들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단번에 터뜨릴 수 없는 답답한 분노의 출구로 체의 아이콘이 종종 선택되는 것이다. 우리 속에 잠재하는 분노의 게릴라전이 승리하는 날이면, 아마도 체 아이콘의 '유비쿼터스'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런던에서의 이번 체 전시회 방문은 필자에게 만감을 안겨주었다. 체는 죽어서 진정 살아있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